대중적 미디음악 시퀀서의 시조
‘케이크워크 by 밴드랩’은 1987년, Twelve Tone Systems, Inc. 에서 개발된 MS-DOS용 시퀀서인 Cakewalk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케이크워크란 단어는 원래 미국 1870년경에 흑인들이 추던 춤의 이름으로서 다리를 높게 들고 몸을 크게 비틀던 자유분방한 춤의 이름입니다 ( Cakewalk Dance 영상 ).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시퀀서로서의 케이크워크는 유연하고 융통성이 많다는 것이 다분히 미국적입니다. 그에 반하여 독일 시퀀서들은 대체로 기능과 인터페이스가 엄밀하고 규격성이 강합니다.
맥의 전신이었던 Atari 컴퓨터용 노테이터(Notator, 로직프로의 전신)이 1992년에 출시되었고, 널리 쓰이고 있는 큐베이스(Cubase)가 1989년에 출시되었기에 케이크워크는 대중음악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가장 오래된 시퀀서 중 하나입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미디음악인의 90% 정도가 케이크워크를 사용했는데 아직은 미디음악은 취미, 동호 음악인들이나 작곡초안용, 게임음악, 가요방 반주 음악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디음악의 붐은 비록 음악이라는 제한된 분야였지만 지금의 스마트폰 열풍처럼 대단했습니다. 특히 롤랜드사의 SC-55라는 사운드 모듈(건반이 없는 악기 샘플 머신)의 보급 또한 그 촉발제였고 서서히 정규 앨범과 라디오, TV 등에서 미디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93년 드디어 윈도우용인 Cakewalk Pro 3.0이 발표되어 악보와 마우스에 의한 그래피컬한 작업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아직은 외장 신디사이저를 위한 MIDI 데이터 처리에 제한되어 있었고, wav 샘플을 살짝 끼워넣는 정도만 가능했습니다.
1996년, Cakewalk Pro Audio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디지털 샘플링 기술이 채용됩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엔 컴퓨터에 보컬을 녹음하고 wav 룹샘플을 사용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녹음된 샘플에 대한 이펙트 처리 역시 비파괴 실시간 처리가 아닌 파괴 편집이었고, 저장 매체의 용량가 컴퓨터의 처리 속도과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VST 기술이 나오기 전이었기에 가상악기 역시 존재하지 않았고, Creative Lab사의 사운드블라스터라는 오디오 PCI 카드가 지원하는 ‘사운드 폰트’라는 샘플링 악기 기술이 있었으나 앨범 수준은 못되었고, 하나의 시도적인 의미 였습니다.
이후 2005년 경까지 케이크워크는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갖고 있었으나 이후 점차 사용자를 잃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Steinberg(큐베이스 제작사)에 의해서 제창된 음악전용 빠른 속도의 ASIO 드라이버와 가상 악기/이펙팅에 최적화된 VST 시스템의 등장이었습니다. 이와달리 케이크워크는 계속해서 호환성에 유리한 윈도우 공통 MME/WDM 드라이버와 DX(Driect Wire) 시스템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결과는 큐베이스의 승리였습니다. 아니 좀더 면밀히 따진다면 MS사의 WDM과 DX에 대한 ASIO와 VST의 승리였습니다.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케이크워크의 패배는 ‘외부 오디오 시스템의 채용에 소홀했던 것이지 케이크워크의 기능의 열세가 아니다’란 점입니다
이 뼈아픈 사실을 뒤늦게 직시하고 케이크워크는 2001년 SONAR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며 ASIO와 VST를 적극 채용하며, 윈도우용 시퀀서 중에서 가장 유연하고 호환성이 뛰어난 시퀀서로 거듭나며 최초의 네이티브 64비트 시퀀서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한번 놓친 사용자들의 관심을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Sonar의 고전과 발전
새로운 이름을 Sonar(음파탐지기)라고 바꾼 이유는 아마도 디지털 오디오 기능에 대한 강조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Cakewalk는 활달 유쾌한 분위기였다면 Sonar는 왠지 2차대전 독일의 U보트나 러시아의 핵잠수함 같은 어둡고 은침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새로운 시퀀서는 다른 시퀀서와 비교하여 한치의 모자란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더 나은 기능으로 혁신해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수를 만회하지 못하면서, Roland사에 이어 Gibson사에 인수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부적인 성능은 계속해서 발전해갑니다. Sonar 1~8.5에 이어서 X1, X2, X3으로 진행하다 2015년 드디어 최고 성능이자 최후의 버전인 Sonar Platinum을 발표합니다. 윈도우10의 향상된 멀티미디어 기반 위에 다음과 같은 혁신들이 이루어집니다.
- ASIO에 버금가는, 윈도우의 향상된 WASAPI(Windows Audio Session API) 오디오 공유 드라이버 선택 가능
- 모든 버전의 무제한 트랙, 무제한 버스 개수 지원
- 다른 시퀀서들과 달리 64비트 뿐 아니라 32비트 가상악기/플러그인들까지 안정적으로 지원
- 서라운드 버스 지원
- CPU의 모든 코어에 대한 고른 작업 배분으로 오디오 드롭 아웃 현상 개선
- 다양한 외부 미디 컨트롤러 지원
- 이전 버전과 크게 달라진 편집도구인 스마트툴, 그리고 유일무이한 멀티트랙 피아노롤 기능
- 강력한 번들 가상악기와 이펙터 (Addictive Drum, Z3Ta+, True Piano, Nomad Factory사의 Blue tube 플러그인, Overloud사의 기타엠프 TH3와 컨벌루션 리버브, 보컬튜닝용 Melodyne 등)
- 샘플 데이터 기본 제공 (REX Loopmaster/Wav, MIDI Grooves)
- 오디오 퀀타이즈를 위한 AudioSnap, 풉 샘플 편집을 위한 Groove Clip, 트랙/버스 믹싱을 위한 체인 이펙터 프리셋, 드럼 샘플 내부의 음색 교환을 위한 Drum Replacer.
- 매달 이루어지는 업데이트
이렇게 완전하고 탁월한 발전, 현존하는 어떤 시퀀서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나의 부흥은 실패합니다. 묘하게도 오히려 성능을 덜어내고 트랜드에 부합하는 에이블톤, 스튜디오원, FL 스튜디오 등의 신흥 시퀀서들이 더욱 사용자층을 확대해 갑니다. 이 아이러니한 현상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소나에게는 ‘기능의 혁신이 아닌 접근의 혁신’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2017년 겨울, Gibson사는 소나의 관리/운영을 포기함으로써 끝이 납니다.
Cakewalk의 부활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 충성하던 유저들 뿐만 아니라 다른 시퀀서 사용자들조차도 Sonar의 종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시퀀서로 이동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사용해보았지만 이미 Soanr의 편리한 작편곡 기능과 유연한 믹싱 방식이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익숙해져 있었으며, 필자의 제자들 또한 그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18년 2월 23일, 싱가포르의 BandLab Technologies사가 소나의 기술/사용권을 인수한 후 혁신적인 접근법을 선택하는데, 바로 전세계에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었습니다. Give And Take가 아닌 Give and Attention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나가 오랜동안 잃어왔던 것은 기능이 아니라 관심이었, 사업은 그 이후부터 가능할 테니까요. 이때 명칭 또한 Cakewalk(by Bandlab)로 다시 복귀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본체는 뮤료로 배포되고 있지만 몇 가지 플러그인들이 제외되었기에 별도 구매하거나 혹은 다른 범용 플러그인들을 구매/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료 혜택을 받는 사용자 입장에서 고가의 플러그인들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이 지나친 것이고, 기본 플러그 이펙터들 역시 음악작업에 사용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필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자신이 즐겨사용하는 플러그인들이 따로 정해져 있기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사항입니다. 단지 어렵게 부활한 Cakewalk의 상황을 고려하여 바라는 바가 있다면 바로 ‘Mac 버전’에 대한 기대입니다.
[무료 다운 받기: https://www.bandlab.com/products/cakewalk ]